토요일 오후 6시 30분이면 주중의 피로를 날려줄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을 시청한다. 자칫 제자리걸음을 하기 쉬운 예능에서 항상 새로운 아이템을 들고나와서 언제나 나를 즐겁게 한다. 또한, 은근히 개그코드가 나와 맞아서 보는 동안 계속 웃게 된다.
8월 18일 날 방송되었던 무한도전 말하는대로 특집도 기대한 만큼 재미있게 보았다. 이 날 무한도전 멤버들의 미션은 버스가 운행을 마치기 전까지 버스에 비어있는 육하원칙을 채워넣는 것이었다. 채워진 문장은 대국민약속으로, 어떻게든 실현되게 된다. (그래서 이번 회 이름도 '말하는대로') 버스의 주어는 각 멤버들의 이름이 적혀있었기 때문에, 멤버들은 남의 버스에 엄청난 내용을 적는 동시에 자신의 버스를 적절히 방어해야했다.
육하원칙 외에 주목할 것은 ★표가 그려진 '조커'란으로, 이 곳엔 조커란 수식어답게 아무 말이나 적을 수 있는 굉장한 효력이 있었다. 그리하여 주어가('누가'부분) 멤버들의 이름 중 하나로 이미 주어진 상태에서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 이렇게 6칸이 빈 칸이며 누군가 글을 적어 문장이 완성되게 하는 그런 게임이 시작되었다.
볼 때야 머리 비우고 재미있게 봤지만, 끝나고 나서는 역시 분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위 에피소드에 대한 다른 여러 블로거들의 글을 읽고 역시 위 규칙이 어딘가 모순이 생길만한 일이 가능하다는 걸 느꼈다.
가령 멤버 정형돈의 버스에 적힌 글귀를 보자.
누가 | 언제 | 어디서 | 무엇을 |
정형돈은 |
재석이랑 하동훈이 원할 때 |
중국집 아니다 본토 만리장성 | 자장면을 |
어떻게 |
왜 | 조커 | |
맨뒤에 조커는 빼고 홍철이와 대준이와 함께 우리가 원하는 분장을 하고 | 제일 좋아해서 | 위에말 다 뻥이야 |
중국 만리장성에서 자장면을 먹는다는 벌칙 내용은 웃으며 넘기고, '어떻게'와 '조커'에 주목한다. 두 파트의 내용이 서로를 지칭하고 있는데, 이 내용에서 나는 주르단의 카드 역설이 문득 떠올랐다. (주르단의 카드 역설을 간단히 설명하면, 카드의 앞문장 왈, 뒷문장은 거짓이다, 뒷문장 왈, 앞분장은 참말이다, 라고 쓰여진 카드) 다행히 서로가 서로를 무효라고 주장한 덕분에 모순은 생기지 않았으나, 대신 2가지 해석을 할 수 있다. 첫째로는 어떻게가 우선시되어 말 그대로 '위에말 다 뻥이야'라는 조커의 말을 빼버리고 벌칙 수행, 둘째로는 조커를 우선시하여 '맨 뒤에 조커는 빼고'란 말을 무시.
한 문장이 동시에 두가지 해석을 내놓게 된 이유는 자가 인용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순환적 구조 때문에 문장이 돌고 돌아 자신에게 돌아오는 상황에선 꼭 이상한 일이 일어나곤 한다. 패러독스 중 제일 유명한 거짓말쟁이 역실인 '이 문장은 거짓이다.'도 결국 자기 인용으로 인에 자가 모순에 빠지게 되지 않던가. 반대로 '이 문장은 참이다.'라는 문장은 앞선 이야기처럼 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거짓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두가지 해석이 있지만, 예능의 정석에 따라 '어떻게'를 우선시하여 정형돈을 포함한 3사람은 중국으로 떠나게 되었다. (모순없이.) 축 당첨!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퍼즐적 요소가 느껴지는 문장은 노홍철의 버스에 적힌 조커이다.
누가 |
언제 |
어디서 |
무엇을 |
노홍철은 |
본인 생일날 |
북한산 정상에서 | |
어떻게 | 왜 | 조커 | |
눈썹, 다리털, 머리 다 밀어버리고 | 사랑하는 내 동생이니까 | 이 미션은 노홍철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이 수행한다 |
노홍철은 그 특유의 약삭바른 두뇌회전으로 가공할만한 조커카드를 떡하니 붙여놓았다. 조커가 주어를 노홍철 본인이 아닌 다른 여섯 멤버로 바꾸어 놓았기 때문에 문장이 완성되면 삭발벌칙은 다른 사람이 받게 되는 것이다! 보면서, 실로 놀랄만한 잔머리라고 감탄했다. 다른 멤버들은 조커를 무력화시키고 싶었지만, '조커를 무시하고'는 '어떻게'에 해당하기 때문에 빈 칸인 '무엇을'에 적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웹서핑을 통해 조사해본 결과 저 엄청난 조커카드를 방어할 매우 재치있는 '무엇을'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노홍철이 삭발벌칙을 받게할 '무엇을'은 무엇인가?
모법답안 :
역시 이런게 말의 묘미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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